광장시장 이야기 스크랩 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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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으로 창립된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골목 가득한 음식 온기에는 107년간의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광장시장 상인들과 여자농구 국가대표팀은 가족 같은 사이였다. 그 인연은 이렇다.

1960년대 말 광장시장을 운영하는 광장주식회사의 김철환 전무는 대한농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김 부회장이 여자농구 대표팀 전원을 광장시장의 음식점에 초대해 회식을 했는데 시장번영회 회장 부회장 총무 등 시장 상인들도 자리에 함께했다.

첫 만남은 어색했다. 상인들의 눈에 당시 성인 남성의 평균 키를 훌쩍 넘는 선수들은 낯설었다. 대표팀의 박신자와 주희봉의 키는 175cm, 신항대는 174cm였다. “어떻게 여자가 허벅지, 장딴지를 훤히 내놓고 뛰어다니느냐”면서 혀를 끌끌 차는 상인도 있었다.


하지만 고기가 익고 술이 돌면서 상인과 선수들은 마음을 열었고, 상인들은 대표팀의 후원을 자처했다. 양품점들은 양장을 맞춰 줬고, 한복집들은 한복을 지어 줬다. 식품점들은 영양식을 챙겨 줬다.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구공을 잡은 선수들이 딸처럼 보인다고 했다. 대표팀이 1967년 체코 세계여자농구 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자 상인들도 함께 울었다.

시장은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1905년 광장주식회사가 창립되면서 첫발을 뗀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상설시장으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상인들의 상권 침범을 지켜 낸 ‘민족 시장’이었고, 광복과 6·25전쟁으로 이어진 혼란기에는 서민의 삶을 지탱해 준 일터이자 밥줄이었다. 13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점포에서 나날이 벌어지는 일상에는 서민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다.

장편소설 ‘군대 이야기’ ‘똥개 행진곡’ 등을 쓴 저자는 이 거대한 이야기의 창고를 때론 논픽션으로, 때론 픽션을 가미해 생생하게 복원한다. 다큐멘터리나 에세이, 아니면 소설로도 읽히는데 아무러면 어떤가. 시장을 중심으로 한국의 현대사가,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삶이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저잣거리에서 건져 낸 보물과도 같은 이야기들이다.


시대의 획을 그었던 인물들도 시장에서 숨쉬고 살았다. 정치깡패 이정재는 동향(경기 이천) 선배인 곽영주 대통령 경호실장의 비호를 받으며 광장시장의 이권을 거머쥐었다. 상인을 등쳐먹는 악한이었지만 의견 충돌이 심했던 시장 여론을 뚫고 1959년 3층 콘크리트 건물을 세워 시장 현대화에 공헌했다. 전태일 열사가 평화시장 ‘시다’로 일하기 전 원단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밀어 주고 30원을 받아 하루하루를 연명했던 터전도 광장시장이다. 이뿐인가. 상인들에게 식사 배달을 하다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 여성, 새벽 5시만 되면 문을 여는 수의점 주인 형제, 폐백 음식을 40년 넘게 만들어 온 이북 출신의 할머니 등이 모두 책의 주인공이다. 책장을 덮으면 광장시장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먹는 빈대떡에 막걸리 맛이 예전과 다를 것 같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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